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총을 든 의열단원이나 해외에서 외교 활동을 하던 지도자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조용한 교실에서도 독립운동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름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조직자, 자금 지원자, 사상 전파자로 활동했다. 이들은 일본이 강요한 황국 신민 교육을 거부하고, 몰래 한글을 가르치거나 역사 교육을 통해 조선인의 정체성을 심어주었다. 글을 가르치는 동시에 조국의 희망을 전했던 교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교사 독립운동가들의 사례와 그들의 교육 방식, 활동 배경, 그리고 사회적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교육을 통한 저항의 역사
일본은 1910년 이후 조선인에게 '황국 신민'으로서의 충성을 강요하며, 학교 교육을 통제했다. 조선어, 조선사 과목이 폐지되거나 왜곡되었고, 천황 숭배와 일본어 사용이 강제되었다. 이에 맞서 일부 교사들은 공교육 안에서 저항을 시도했다. 교실에서 '한글 일기 쓰기'를 독려하거나, 퇴근 후 서당이나 야학을 열어 실제 한국사를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 보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대표적인 교사 독립운동가들
이육사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사였다. 안동고보 교사로 재직하던 중 조선의 현실을 시로 표현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또 다른 인물로 남강 이승훈이 있다. 그는 대성학교를 설립해 근대 교육을 통해 민족의 힘을 기르고자 했다. 평안북도의 조만식 역시 교사 출신으로, 학교 교육을 통해 자립 정신을 전파했으며, 학생들에게 실용 기술과 한글 사용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이 외에도 이름 없이 활동한 수백 명의 무명 교사들이, 교과서를 넘어선 교육을 실천했다.
일제강점기 교육 저항 유형 비교표
| 구분 | 공교육 내부 저항 | 비공식 교육 활동 | 학교 설립형 운동 |
|---|---|---|---|
| 대표 인물 | 이육사 | 무명의 교사들 | 이승훈, 조만식 |
| 교육 방식 | 수업 중 민족시 낭독 | 한글 교육 야학 운영 | 민족 사립학교 설립 |
| 위험 요소 | 일제 감시 및 해직 | 체포 및 구금 | 학교 폐쇄, 자산 몰수 |
| 영향력 | 학생 개별 의식 각성 | 지역 사회 정체성 보존 | 독립운동의 기반 확대 |
이들의 활동이 남긴 유산
이들이 지킨 것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조선인의 ‘말’과 ‘글’이었다. 일제는 언어와 사상의 통제를 통해 민족을 지우려 했지만, 교사들은 이를 끝까지 붙들었다. 덕분에 해방 이후에도 조선어는 살아 있었고, 민족 정체성은 꺾이지 않았다. 또한, 이들의 교육은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씨앗 역할을 했다. 학생들 중 일부는 독립군이 되었고, 또 일부는 해방 후 민족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결론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은 칼과 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교사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칠판 위에서 민족혼을 새겼고, 교실에서 조국의 내일을 준비했다. 이들의 기록은 많지 않지만, 남긴 영향은 깊고 넓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어로 글을 쓰고, 한국사로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교사들의 저항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