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698년 건국 이후 약 200여 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는 발해 외교의 중요한 축이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내세우면서도,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통해 자국의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려 했다. 일본 또한 발해와의 교류를 통해 대륙의 문물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며 발전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발해와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교류했는지, 그 결과 동아시아 국제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살펴본다.
발해의 대일 외교 목적
발해가 일본과 교류한 가장 큰 이유는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발해는 당나라와의 관계가 긴장 상태였고, 북방 거란 세력과도 갈등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과의 외교는 발해에게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외적 정통성을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교류의 구체적 방식
발해와 일본은 사신 파견과 물자 교역을 중심으로 교류했다. 발해는 공식적으로 30회 이상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으며, 일본은 발해 사신을 정중히 맞이하며 대등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교류 과정에서 발해는 모피, 인삼, 말 등을 수출했고, 일본으로부터는 철, 공예품 등을 수입했다.
발해-일본 교류의 내용 비교
| 구분 | 발해 → 일본 | 일본 → 발해 |
|---|---|---|
| 주요 물자 | 모피, 말, 인삼 | 철, 직물, 공예품 |
| 외교 목적 | 우호 확보, 국제적 정통성 강화 | 대륙 문물 간접 수용 |
| 문화 교류 | 불교 교리, 대륙 문물 전달 | 일본의 학문·문화 발전에 활용 |
일본에 미친 영향
발해와의 교류는 일본이 대륙 문화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통로였다. 일본은 발해를 통해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는 일본의 불교·학문·예술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발해 사신의 방문은 일본 사회에서 국제 외교의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해의 외교적 성과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고립을 피하고, 고구려 계승 국가로서의 위상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특히 일본과의 우호 관계는 발해가 당나라와 대립하던 시기 전략적 완충 역할을 했다. 이는 발해가 단순한 변방 국가가 아니라, 국제 정세 속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결론: 발해-일본 교류는 국제 질서 속 전략적 선택이었다
발해와 일본의 교류는 단순한 외교 왕래가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각국이 생존과 발전을 모색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발해는 일본과의 관계를 통해 외교적 고립을 피하고, 일본은 발해를 통해 대륙 문물을 받아들였다. 이 교류의 흔적은 발해가 동북아 국제 관계의 중요한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