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발해는 고구려의 후계 국가로서 동북아시아에서 약 200여 년 동안 존속한 독특한 문명 국가였다. 그러나 발해사를 다룰 때는 대체로 정치와 외교, 문화만 집중적으로 조명될 뿐, 사회 구성원인 여성의 역할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발굴된 무덤 벽화와 묘지명, 중국 사서 기록을 종합하면 발해 여성은 단순한 가정 내 존재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 활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발해 여성의 지위가 어떤 특징을 가졌으며, 동시대 신라·당나라 여성과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를 살펴본다.

발해 여성의 가정 내 지위

발해 여성은 가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묘지명에서는 여성을 '가문의 주인'으로 표현하며, 재산 관리나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록이 있다. 이는 유교적 질서가 강했던 조선과는 달리, 발해가 고구려적 전통과 말갈 문화의 융합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폭넓게 인정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경제 활동과 여성

발해 여성은 농업과 수공업에 적극 참여했으며, 일부는 교역 활동에도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가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고려할 때, 여성들이 가내 수공업 생산과 시장 활동에서 일정한 권한을 가졌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발해 무덤에서 직물 제작 도구나 장식품이 출토된 사실은 여성 경제 활동의 흔적을 보여준다.

사회적 지위 비교

국가 여성 지위 특징
발해 상대적으로 높음 재산 관리, 경제 활동 참여, 묘지명에 이름 기록
신라 귀족 여성은 영향력 있으나 일반 여성은 제한적 골품제 하에서 신분 따라 큰 차이 존재
당나라 상대적으로 자유로움 문학·예술 활동 참여, 일부 여성의 정치적 진출

발해 여성의 문화적 역할

발해 여성은 묘지명과 벽화 속에서 화려한 복식과 장신구를 착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문화적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또한 발해는 불교가 성행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사찰과 종교 활동에 참여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는 발해 여성들이 문화·종교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결론: 발해 여성은 조용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발해 여성은 단순히 가정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영역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발해 사회가 동아시아 속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 여성의 기여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시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발해 여성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는 발해의 개방성과 다문화적 성격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발해사를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포함시키는 것은 앞으로 더욱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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