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국경분쟁과 압록강 이남 영토 문제


 

고려시대는 단순한 왕조의 변화와 문화 발전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외교와 국경 조정이 이뤄졌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주제가 바로 압록강 이남 지역에 대한 고려의 실질적 통치 여부이다. 많은 역사 기록은 고려의 북방 영토가 압록강까지 미쳤다고 서술하지만, 실제로 압록강 이남 일부 지역은 여진족과 송나라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분쟁 대상이 되었다. 특히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까지는 국경 분쟁이 고려 외교의 중심 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당시 고려가 어떤 방식으로 이 지역을 통제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주변 세력과의 갈등은 어떤 양상을 보였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려고 한다.

압록강 이남은 고려의 완전한 영토였을까?

압록강은 한반도의 북서쪽 국경을 형성하는 자연적인 경계선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고려 초중기에는 이 지역을 두고 거란과 여진족의 세력 확장 시도가 지속되었고, 실제로 국경선은 매우 유동적이었다. 고려 정부는 이를 군사력보다는 외교력으로 통제하려 했고, 국경 지역에 성을 쌓거나 군사를 주둔시키기보다는 현지 토착 세력과의 연계를 통해 간접적인 통치를 시도하였다.

고려-요나라 외교 문서에 드러난 갈등

고려는 요나라와의 외교 문서에서 압록강 이남에 대한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요나라는 자신들의 영향력이 이 지역까지 미친다고 반박했다. 특히 993년 서희의 담판은 유명하지만, 그 이후에도 분쟁은 계속되었다. 고려는 이후에도 압록강 이남에서 거란족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질적 지배가 아닌 명목상의 영토 주장에 머문 시기가 많았다.

압록강 이남 영토 분쟁의 역사적 기록

연도 주요 사건 관련 세력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 철수 유도 고려 vs 거란
1010년 거란 2차 침입, 국경 방어선 재조정 고려 vs 거란
1033년 압록강 일대 천리장성 축조 시작 고려

결론: 고려는 왜 압록강 이남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는가?

고려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북방 지역에 대한 직접 통치는 여러 한계를 안고 있었다. 첫째, 외교적 안정이 우선시된 상황에서 군사적 점령보다는 협상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둘째, 당시의 교통과 통신의 한계로 인해 중앙의 명령이 북방까지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북방 지역의 토착 세력들은 자치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고려 정부도 일정 부분 그들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압록강 이남 지역은 고려의 '명목상 영토'로 남은 경우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후대 역사에서 이 지역의 실질적 지배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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